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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후기

귀스타브 르 봉의 『사회주의의 심리학』을 읽고

‘사회주의의 심리학’을 쓴 귀스타브 르 봉(1841-1931)은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로 군중의 심리학으로 특히 유명하다. 책 제목은 사회주의의 심리학이지만 읽고 난 후에는 라틴 민족과 앵글로 색슨족의 비교가 더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앵글로 색슨 족의 우월함과 라틴 민족의 열등함에 대해 비교 분석한다. 더 이상 지구상에 순수한 인종은 남아있지 않으므로 작가는 자신이 말하는 민족이 인류학적 의미를 뜻한다고 밝히고 있다. 

ⓒ 알라딘

책 속에서 앵글로 색슨 족은 영국, 미국인들을 말하며 라틴 민족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인 등등을 의미한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앵글로 색슨 족의 특징은 진취성, 절제력,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 집단적 결속력 등등이며 라틴 민족의 특징은 게으름과 무책임함, 강한 자에게 복종하려는 습성, 정부에게 책임을 떠 넘기려는 특성 등이다. 


사회주의는 스스로를 책임지기 두려워하는 약한 개인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이론이기에 라틴 민족이 특히 사회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약한 자들을 포섭한 사회주의는 개개인의 개성을 지워버리고 뛰어난 개인들은 제거해 버리며 모두가 별 볼일 없이 똑같은 열등한 집단을 이루게 된다고 말한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이 아니며 단지 사용되는 용어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왕에게 복종하던 것이 이후에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식으로 강한  누군가에게 귀속되고 의지하려는 민족적 특성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 앵글로 색슨 족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그들 스스로에게서 찾으며 라틴 민족이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요구 사항이 있을 때는 기업과 상의할 줄 알며 결코 기업과 자본가에게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는데 그것은 기업 없이는 본인들이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의 노동자들은 절제할 줄 알며 스스로의 삶에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강한 개인들의 집단에서는 사회주의가 퍼질 위험이 거의 없다고 작가는 예측한다. 


작가는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찬사를 바치며 프랑스의 노동자들에 대해서 악담에 가까운 말들을 퍼부으면서도 영국과 프랑스의 기업과 자본가의 차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며칠 전 기사에 따르면 영국이 선진국 중에서도 임금이 최상위권에 속하며 앞으로 시행할 예정인 생활임금 법안이 통과되면 1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작가가 노동자들의 우열만 가릴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노동자들이 무엇을 받는지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가 어떤지도 함께 비교했다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 위키피디아

작가는 기본적으로 강한 인간이 약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당연한 흐름이며 그 것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입장을 유지하는 데 이렇게 강한 인간이 지배하는 국가가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앞설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자연적, 반자연적이다. 작가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문명 속에서 왜 자연 속의 동물들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는 예술을 문명의 모든 요소 중에서도 중요한 한 가지로 꼽고 있는데 파리가 한 때는 예술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고급 패션의 중심지인 것을 생각할 때 개성 없고 평준화 된 무기력한 개인들의 집합으로는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또한 파리의 대학은 천편일률적이고 실제적인 일은 하나도 해결할 줄 모르는 교수들과 졸업생들만을 배출할 뿐이라고 하는데, 귀스타브 르 봉이 사르트르, 미셀 푸코, 레비 스트로스 등 뛰어나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학자들을 봤더라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작가는 미국인들이 뛰어난 자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영국의 교육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데 사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프러시아의 교육법을 수용했기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교육법이 어떻게 다른 지 비교 분석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귀스타브 르 봉은 그 정도의 친절은 보여주지 않는다.

 

책 속에서 작가는 다양한 주장과 예측을 하고 있고 그 중 예리하고 정확한 것들도 많고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주장에 비해 구체적 근거가 부족하기에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고급 재료로 훌륭한 바닥을 깔았는데 중간 중간 구멍이 뚫려 있어 걷다가 발이 푹푹 빠지는 느낌이다. 모든 사회적 현상, 역사적 사건에 대한 원인을 민족적 특성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며 그 외에 다른 원인들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에 흥미롭게 읽히면서도 동시에 몰입하기가 힘든 책이었다.